당신이 어떻게 생각할지 몰라도, 나는 아직 우리가 밟아온 모든 순간과 시간의 끝을 기억하고 있어요. 여름의 실바람에 흩날리는 앞머리, 손끝에서 몽우리 지는 향긋한 온기, 여명과 아침의 경계에서 반짝이는 햇살… 하지만 나는 이제 슬픔을 침대로 삼은 비탄의 포말, 우린 비록 이름은 같을지언정 내게는 나 자신을 구원할 힘조차 있지 않았습니다. 그레트헨, 사실은 그녀 또한 그저 마녀의 저주였을 뿐이었죠. 우리의 이별이 서툰 이유는 만남 또한 서툴렀기 때문이에요. 당신을 사랑하는 것마저 서툰 나이기에 고작 이렇게 마음속 한켠에서 인사할 수밖에 없는 나를 용서하세요.
이기적이라는 걸 알지만 당신에게 나는 어떤 존재였는지, 그게 솔직히 좀 궁금했어요. 이상하게 당신과 있으면 마치 우리 숨 속에 거대한 블랙홀이라도 건재하듯 내 모든 시간과, 바람과, 공기와, 감각과, 바다와, 하늘과, 별과 우주 따위가 아주 느리게 흐르고는 했으니까. 심장조차 멈출 듯이 느리게 쿵쾅대었고… 나는 당신이라는 크나큰 중력에 묶여 유영하는 작은 별이었어요. 당신에게 있어 나는 그 질량에 한 줌이라도 포함되는 존재였을까? 글쎄요, 자신이 있다면 거짓말이겠지요.
우습게 느껴져도 어쩔 수 없어요. 먼지 쌓인 서랍 속에 고이 접어다 숨겨둔 것은 아마도 미련이었어. 먼저 자리를 떠난 건 나임에도 불구하고 황량하게 빈 당신의 부재는 어둠이 서린 호수보다 깊어요. 그렇지만 자석의 같은 극을 밀어붙이듯, 내가 그 자리에 억지로 버티고 서있다는 건 호수에 칼날 같은 눈가루를 들이붓는 일과 다름없다는 걸 알아요. 죽음을 거부하기에 내 힘은 너무나도 미약하죠. 난 그게 더없이 미안할 뿐이랍니다. 당신의 부재를 이해하는 것보다 견딜 수 없는 건 이젠 당신을 생각하는 것조차 점점 힘겨워지고 있다는 거예요. 신은 왜 내게서 머리로 기억할 여력마저 앗아가버렸나요? 당신을 사랑할수록 깊어지는 것은 사랑이 아닌 당신이었어요. 내 숨결의 방향, 내 영혼의 새벽… 하지만 끓어오르는 불길은 그것마저 방해하기 시작했지요.
그렇지만 이 또한 시간이 흐르는 자국을 따라 점차 무뎌질 거예요. 홧홧한 열기로 타오르는 채 예전과 같이 당신을 사랑하겠다는 건 메피스토의 기도만큼이나 추악한 바람이겠죠. 당신과 내가 손잡고 걸어갈 미래의 끝은 눈물과 참담함으로 가득 찬 우물의 바닥일 테니까. 나의 불행은 오직 나만의 것, 그게 당신에게 전이되는 것을 원치 않아요. 당신은 이제 조금은 행복해질 권리를 가지고 있어요. 그 권리를 존중한 내 선택마저 부디 존중해주기를. 내 눈물에 흩뿌린 은하수와 바꾸어 당신의 행복을 바칠게요.
구차스럽지만 나는 이제 하루에 세 번씩, 당신을 간헐적으로 그리워할 거예요. 눈꺼풀을 들어 올리기조차 버거워도, 허파가 내 두 숨을 꽉 죄어와도 당신을 생각할게요. 하지만 당신은 더는 나를 그리워하지 않아도 좋아. 그림자마저 닿지 않는 물속에 나를 가두어도 괜찮아요. 그래도 아주 가끔은… 햇볕에 말린 낙엽과 함께 책갈피 속에 끼워둔 나를, 저 먼 기억 속에 접어둔 나를 가끔씩 꺼내서 아주 잠깐이라도 생각해주세요. 곰팡이로 젖지 않게끔 실낱처럼 스러지는 달빛에 나를 쐬어주세요. 그렇게만 해준다면 나는 더없이 행복하겠지요.
짙은 어둠이 물러나고, 어스름한 새벽의 일광이 하늘을 비추고 있어요. 얼굴로 쏟아지는 희미한 빛에서 난 가까스로 희망을 안았죠. 황혼이 저문 여명의 끝자락에서 파우스트와 그레트헨이 재회하듯, 우리의 만남 또한 다시 이루어지거든 그건 분명 새벽의 닻별 아래일 테니까. 온 우주를 헤맨다 해도 쏟아지는 별똥별 사이에서 빛나는 당신을 찾아내 두 손을 꼭 잡아줄게요. 그때는 비로소 이 밤을 드리우는 물안개를 걷어낼 수 있겠죠.
이것은 작고, 철딱서니 없는 어린 마법사가 더 작고, 철딱서니 없었을 때의 자신을 되짚어 본 회고이자, 그녀에 대한 타인의 단상.
1.
카마르 타지에 쥐방울만 한 손님이 나타난 것은 아마 십년 전 쯤의 일이었다. 그는 고작 여섯 살 먹은 코흘리개 여자아이로, 불과 몇 분 전까지만 해도 펑펑 울던 참이었는지 분홍빛으로 퉁퉁 부운 눈꺼풀과 여기저기 얼룩진 눈물 범벅의 얼굴로 어느 수련생의 손을 꼭 붙잡은 채 울음을 꾹 참는 중이었다. 아이를 데려온 장본인인 케실리우스는 그녀가 아마 여행 도중 부득이하게 부모를 잃은 미아일 거라 설명하며, 아이의 부모를 찾아줘야 한다고 했다. 계집애는 카마르 타지의 이들이 걸어오는 말에 간단한 대답조차 하지 않았다. 동아시아계로 추정되는 하얀 피부, 때가 좀 타긴 했지만 비싸고 깔끔한 원피스와 머리 스타일로 본 바 학생들은 분명 아이가 좋은 교육 환경 속에서 자랐을 거라 생각했고, 그게 아니더라도 초등학교 1학년이면 적어도 자기 이름 쯤은 영어로 말할 수 있을 테였지만 코흘리개는 Hello 하는 인사 한 마디도 내뱉는 일이 없었다. 학생들이 말을 걸면 그저 울먹울먹 입술을 달싹이다 케실리우스의 팔에 얼굴을 푹 묻어버릴 뿐이었다. 그렇다고 케실리우스가 걸어오는 말엔 꼬박꼬박 대꾸를 하는 것도 아니었다. 학생들은 일단 아이를 자신들의 스승에게 데려갔다. 에인션트 원의 앞에 앉은 아이는 그녀가 무서운지 차를 홀짝이며 자꾸 눈치를 보았다. 아이를 빤히 쳐다보던 에인션트 원은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 의도적으로 버리고 간 아이야. 부모에게 데려다 주는 건 그다지 좋은 일이 아니겠군. 애초에 친부모도 아니고.
케실리우스의 눈썹이 비뚜름히 올라갔다. 영어를 못 알아 들은 건지 아이의 표정에는 변화가 없었다. 케실리우스는 작은 계집애가 불쌍했다.
2.
3일 정도가 지난 후에야 겨우 아이는 입을 열었다. 계집애의 영어 실력은 어린애 치곤 썩 훌륭한 편이었다. 학생들은 아이가 역시 유복한 가정에서 괜찮은 교육을 받으며 자란 아가씨였을 거라고 추측했다. 그러나 계집애가 행복한 삶을 살았을 거라 생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실제로 아이는 온갖 조기 교육과 영어 유치원 수료를 마쳤지만 그다지 행복하지는 않았다. 아이는 자신을 '신'이라는 이름으로 불러달라고 서툰 솜씨로 말했다. 학생들은 그 이름이 본명이 아니라는 사실을 단박에 눈치챘지만 소녀의 부탁을 들어주었다. 또 아이는 자신이 한국인이라고 말했다. 눈치 없는 학생 하나가 그 와중에 '김일성? 김정일?' 하고 깝죽거렸으나("야! 노스 코리안이 여길 어떻게 와?!" 하고 한 학생이 덧붙였다)계집애는 별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어쨌든 계집애에 대한 의문이 풀렸다. 그녀는 자신이 여덟 살이라고 설명했지만, 아무리 봐도 계집애는 고작 대여섯 쯤의 나이로밖에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학생들은 아이에게 나이를 만으로 계산하는 법-개념이 어려운 건지 영어라서 못 알아들은 건지 제대로 이해한 것 같지는 않았다-을 알려주었고, 그 뒤로 아이는 자신이 여섯 살이라고 말했다.
3.
앞서 말했듯 아이는 그럭저럭 영어를 할 줄 알았지만, 그렇다고 말을 능숙하게 하거나 모든 말을 알아 듣는 수준은 아니었다. 고작 미국인 유치원생에 조금 못 미치는 말을 구사할뿐이었다. 에인션트 원은 아무래도 영어부터 가르치는 편이 좋겠다고 말했다. 케실리우스 또한 그렇게 생각했다. 케실리우스는 다음 날 모르도와 함께 게이트 웨이를 통해 한국으로 가서 괜찮은 아동용 영어 교재들을 몇 권 구입했다. 근처에 있는 옷가게에서 원피스와 가디건 같은 옷들도 사고, 분홍색 강아지 인형도 샀다. 쇼핑백들을 한 가득 들고 따라 걷던 모르도가 혀를 찼다.
- 너무 많이 사는 거 아냐? - 보통의 어린애들이 누리는 것들을 샀을 뿐이야.
툭 담담한 대답을 내뱉고, 계속 시내를 구경하던 케실리우스는 급기야 문득 눈에 뛴 개량 한복점에서 여아용 생활 한복까지 구매하기에 이르렀다. 모르도가 또 옆에서 한 소리 했으나 카마르 타지의 학생들의 생각은 달랐다. 짧은 한복을 입고 귀여운 강아지 인형을 든 꼬마의 모습을 사람들은 꽤나 마음에 들어했다. 아이는 유일하게 카마르 타지에서 수도복이 아닌 옷을 입고 다니는 이가 되었다.
4.
케실리우스는 수련을 하는 시간을 제외하곤 오로지 아이에게 영어를 가르치는 데 힘썼다. 아이가 띨띨해지는 것을 원치 않았던 그는 수학, 과학, 사회 같은 과목도 조금이나마 가르쳤다. 소녀의 교육에는 에인션트 원도 함께 거들었다. 아이는 케실리우스를 사랑했지만 그만큼 고대의 존재도 사랑했다. 서운해진 케실리우스가 물었다.
- 신, 너는 가만 보면 나보다 스승님을 더 좋아하는 것 같단 말이야. 하지만 넌 나와 함께 지내는 시간이 더 많잖아. - 아냐, 난 카이시랑 스승님을 똑같이 좋아해. - 그러니까 왜 스승님과 내가 너한테 동급인 거지? 그녀보다는 내가 더 잘해줬다고 자신할 수 있는데. - 엄청 멋있으시잖아. 또 자상하시고!
아이가 눈을 반짝였다. 아이는 미스틱 아트를 배우지 않았지만, 마법을 쓰는 에인션트 원의 모습-여기서 마스터인 케실리우스가 자신의 마법 실력 또한 대단하다고 강조했다-을 멋있다고 생각했다.
주먹만 한 빗방울이 창문을 두드리는 검은 오후가 되면, 항상 그 하늘의 구름만큼이나 검던 여인의 눈동자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검은 포말을 일으키며 활활 타오르는 바다. 까만 재가 되어 바스러지는 맨덜리. 이 세상의 모든 까만 것들을 볼 때면 필히 여인이 연상되었던 까닭은 비단 그녀의 옷이 늘 검정이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녀는 언제나 검은 것과 함께였으되, 그 존재마저도 팔레트의 온 물감을 죄다 칠해놓은 듯 검었다. 밤하늘에 수놓은 구덩이 같은 검정. 단아하면서도 고풍스러운 검음. 여자는 맨덜리의 재로 뒤덮인 그곳에서, 여인이 바라보았던 그 까만 바다를 멀거니 바라보았다.
2.
- 레베카, 어서 돌아와. 여기 맨덜리로.
여자는 가끔 마음에도 없는 말을 톡톡 내던지고는 했다. 단지 여인이 그러기를 원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여자는 레베카가 맨덜리로 돌아오기를 진심으로 바라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종종 소용돌이를 향해 바라지 않는 바람을 커다랗게 외치는 것을 좋아했다. 미간에 주름이 잡힐 만큼 두 눈을 질끈 감고는, 레베카ㅡ돌아와ㅡ여기ㅡ맨덜리로! 그러면 파도도 자신을 따라서 커다랗게 외쳤다. 여기, 맨덜리로! 드 윈터의 잔해가 뒤섞인 파도도 은밀하게 속삭였다.
여기, 맨덜리로!
3.
여자가 여인을 만났을 때, 그녀는 차마 '여자'라고 부르기 민망할 만큼 자그마한 계집애였고, '계집애'라고 하기에는 또 여자에 조금 더 가까운 애매한 나이였다. 그녀는 성년을 2년 반 밖에, 그리고 2년 반이나 앞두고 있었던 고작 16년 하고 4개월짜리 여자아이였다. 그러나 잔 다르크와 알로이지아가 그렇듯, 보통 이맘때 쯤의 여자아이는 '소녀'라고 부르는 것이 보편적이니 여기에서도 그녀를 소녀라고 부르는 게 낫겠다.
어쨌든, 사실 소녀는 처음에 여인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일이 서툴던 자신에게 언제나 따가운 잔소리를 퍼부어 대는 것(원래 저 나잇대의 꼬맹이들은 유치하기 짝이 없어서, 쓴소리 한 번 듣는 것에 진저리를 치곤 한다)이 가장 큰 이유였고, 너무 차갑고 무뚝뚝한 말투도 싫었으며, '새 안주인'인 드 윈터 부인에게 못살게 구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소녀는 드 윈터 부인을 동정했다. 언제나 처연하게 어깨를 축 늘이고 다니는 단발머리가 퍽 안쓰럽게 느껴졌다. 그녀는 옛 안주인의 고혹적인 미소도 좋았지만, 현재의 드 윈터 부인에게 더 깊은 애착과 연민 어린 호감을 가지고 있었다. 모름지기 사람이란 감히 범접할 수 없이 잘난 사람보다는 자신의 처지보다 못난 사람에게 관대한 법이다.
소녀와 어울려 다니는 맨덜리의 어린 하녀들도 그녀와 다를 바 없이 집사 여인을 따르면서도 한편으로는 불평했다. 그녀들은 종종 물 젖은 손걸레를 꼭꼭 접으면서 이렇게 떠들고는 했다.
- 아이, 개같은! 또 걸레질이야! 5일째 계속 창틀만 닦고 있잖아!
- 이제 제발 다른 일 좀 시켜 주시면 안 되나? 손톱이 다 새까매졌다고.
- 그건 우리가 지난번에 주방에서 접시를 세 장이나 깨뜨려서 그래.
- 이참에 창문도 한 번 깨뜨려볼까. 혹시 아니, 또 다른 일을 시켜 주실지.
- 네가 그랬다간 해고당할걸, 아녜스.
어린 하녀들의 입에서 쏟아지는 수다스러운 말들을 결국 한 마디로 묶으면 이렇다.
- 댄버스 부인은 항상 레베카만 찾아. 꼭 그녀가 살아있는 것처럼 군다고.
소녀 또한 언제나 옛 주인만을 그리는 여인의 모습이 못마땅했지만, 모순적이게도 그것은 소녀가 집사를 따르게 되는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다.
4.
비가 몹시도 쏟아지는 어느 날 오후, 한적한 저택을 거닐던 소녀는 문득 예전 드 윈터 부인의 방이었던 곳에서 기이한 인기척을 느끼고 그쪽으로 슬며시 발걸음을 옮겼다. 사실 그녀는 레베카의 방에 발등조차 들이밀 권한이 없었으나, 이렇다 할 일거리도 없는 데다 마침 내리던 비 때문에 추적해진 하인들은 모두 제 방으로 들어갔고, 드 윈터 씨와 드 윈터 부인도 저들 방에서 체스를 두고 있던 연유로 괜히 저택 안을 발발 돌아다니는 이는 그녀 하나뿐이었다. 들킬 염려는 전혀 없었다. 소녀는 한 손에 제 키보다도 기다란 대걸레를 들고, 호기심 가득한 표정으로 조심스레 방문 앞에서 서성거렸다. 귀를 기울여 방에서 나는 소리로 그 주인을 유추한 그녀는, 이윽고 방 안에는 어느 여인 하나뿐이라는 걸 깨달았다. 댄버스 부인! 방이 워낙에 넓고 문이 두꺼워서 목소리만으로는 결코 알아낼 수 없었으나, 레베카의 방에서 홀로 조곤거리는 여인이라면 이 세상, 아니, 적어도 맨덜리에서는 오직 한 명밖에 없었다. 댄버스, 무뚝뚝한 그 맨덜리의 집사는 예전 드 윈터 부인의 어린 시절부터 그녀를 돌봐왔던 유일한 사람임과 동시에 앞서 말했듯 소녀가 저택에서 별로 좋아하지 않는 사람 중 하나였다. 소녀는 하필 방 안에 있던 것이 댄버스 부인이라는 사실에 절망하면서(하지만 결코 ‘레베카의 방에 있던 어떤 사람’이라는 결정적인 단서만으로도 그녀라는 걸 단박에 눈치채지 못 한 자신을 원망하지는 않았다), 들킬세라 발걸음 하나에 온 신경을 집중해 조심조심 내딛어 그곳을 빠져나가려 했다. 그러나 소녀는 고작 30초도 채 지나지 않은 시간 만에 다시 레베카의 방 앞으로 도도도 달려왔다. 댄버스 부인의 모습이 이상하게 궁금했기 때문이었다. 보나 마나 레베카, 또다시 레베카를 중얼거리고 있을 것이 뻔했지만 그 모습을 직접 목격하고 싶은 마음이 은근슬쩍 그녀를 부추겼다. 소녀는 떨리는 숨을 한 모금 삼켜 허파를 가득 채우고, 손잡이를 잡은 손에 조금씩 힘을 실었다. 스르륵, 문이 반 틈 정도 열리는 느낌이 오른팔을 타고 느껴졌다. 과연 저택에서 가장 좋은 방임을 증명하는 듯, 고급스러운 무늬의 문은 끽 소리 하나 없이 부드럽게 열렸다. 소녀는 살짝 열린 문틈 사이로 오른쪽 눈을 힐끔 대었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하늘과 바다 사이에 경계가 흐릴 정도로 온통 새까맣기만 한 창문 너머의 전경이었다. 언제나 우중충하게 닫혀있던 커튼은 활짝 열려있었고, 그 뒤로 시커먼 파도가 입을 벌리고 요동치고 있었다. 레베카, 드 윈터 부인의 영혼을 머금었던 그 바다가.
여인은 창문 앞에 서서 회색으로 탁해진 포말을 넋 놓고 바라보고 있었다. 가끔씩 어깨를 들썩이기도 하고, 무어라 중얼거리기도 하는데 소녀는 여인이 어떤 말을 하는지까지는 알 수 없었다. 소녀는 호기심으로 한쪽 고개를 갸웃거리며, 여인을 조금 더 자세히 살피다 돌연 그 자세 그대로 멈춰버렸다.
부인은 울고 있었다. 흐느끼는 목소리 한 올에 그녀의 온 슬픔이 쏟아졌다. 구김 없이 단정했던 드레스는 주름이 잔뜩 잡혀있었고, 틀어 올린 머리카락은 잔뜩 흐트러져 드러난 쇄골 위로 잔머리가 흘러내렸다. 하얀 두 뺨에는 눈물이 한줄기 떨어져 유리처럼 반짝였다. 창문 밖과 방 안은 온통 그녀의 설움으로 비 내리고 있었다. 여인은 떨리는 목소리로 바다를 향해 파르르 입술을 달싹였다.
- 레베카, 돌아와요. 안개의 맨덜리로.
파도도 그녀를 따라 희미하게 속삭였다. 레베카. 레베카, 어서 와요, 맨덜리로. 레베카! 온 세상이 고작 세 음절의 짧은 이름으로 슬픔을 요동쳤다. 레베카.
소녀는 문을 닫고 조용히 제 방으로 돌아갔다. 적막 위로 비 내리는 소리가 그녀의 귀를 간질였다. 자정이 되도록 새까만 비는 그칠 줄 모르고 후두둑 떨어졌다.
5.
그때부터 소녀는 여인을 ‘덴버’라고 부르며 강아지처럼 졸졸졸 따라다니기 시작했다. 여인은 그런 그녀가 말로 못 이룰 만큼 귀찮기 그저 없었다. 분명 저를 못마땅하게 생각했던 것이 역력했던 어린 하녀가 언젠가부터 자신을 거머리처럼 따르는 상황에 기가 막히면서도 한편으로는 황당하기도 했다. 집사는 넌덜머리가 났다. 무엇보다도 ‘덴버’라는 별 웃기지도 않는 호칭으로 저를 부르는 게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아니나 다를까, 이번에도 식탁보를 정리하고 있던 여인을 또 언제 발견한 것인지 소녀가 ‘덴버 씨!’하고 커다랗게 외치며 쪼르르 달려왔다. 집사는 인상을 팍 찡그리며, 소녀는 거들떠보지도 않은 채 하던 일을 마저 했다.
- 그렇게 부르지 말라고 했을 텐데요.
계집애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서 더듬더듬 말했다.
- 그, 그렇지만 대니는 남자 이름인데요. 예전에 알던 우유 배달부 꼬맹이 이름도 대니였단 말이에요."
그녀는 아마 집사의 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이 틀림없었다. 어이가 없어 잠시 어떻게 답할지 할 말을 잃은 여인은 이내 다시 무뚝뚝하게 대답했다.
- 댄버스 부인이라고 불러요.
- 그건 너무 딱딱한걸요.
말이 통하지 않았다. 집사는 그녀를 아예 무시해버리고 접시를 개수대에 가져다 놓았다. 소녀는 여인의 주위를 부산하게 맴돌다, 이내 저도 그녀를 도와 주방 일을 하기 시작했다. 드 윈터 부인의 티타임에 내올 요량인지, 크림처럼 녹은 버터에 솜씨 있게 설탕을 섞으면서도 입으로는 여전히 덴버, 덴버 하기를 멈추지 않았다. 여인은 한숨을 폭 내쉬었다.
- 그냥 댄버스 부인이라고 부르세요.
소녀가 말했다.
- 싫어요.
- 댄버스 부인이라고 부르십시오.
- 싫어요.
여인은 슬슬 짜증이 오르기 시작했다. 어느새 반죽을 끝냈는지 밀가루와 초콜릿을 선반 위에 올려 두고 온 소녀는, 후다닥 오븐에 불을 올리고 다시 집사에게 다가왔다. 여인은 계속해서 그녀를 무시했다. 그러나 쥐방울만 한 계집애는 두 눈동자를 초롱초롱 빛내며, 무언가 기대를 하는 듯 그녀를 빤히 바라볼 뿐이었다. 진득한 신경전이 시작되었다. 어린 하녀는 쳐다보고, 집사는 무시하기를 반복했다. 결국 못 이긴 소녀가 먼저 여인에게 말을 던졌다.
- 덴버라고 부르면 안 돼요?
- 안 됩니다.
- 왜요?
여인은 무시했다. 대답할 가치가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참을성 있는 소녀는 계속해서 끈질기게 여인을 졸라댔다.
- 덴버라고 부르면 안 돼요?
- 안 됩니다.
- 덴버가 예쁜데.
- 안 됩니다.
픽, 연거푸 이어지는 거절에 기가 죽은 소녀는 축 처져서 적당히 데워진 오븐 위에 동그란 쿠키 반죽들을 조막조막 올렸다. 뜨거운 바닐라 향기가 하얗게 공기를 타고 코끝으로 퍼졌다. 반죽이 부푸는 것만 의미 없이 쳐다보던 소녀는, 이내 여인더러 들으라는 듯 커다란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 도대체 왜 안 된다는 걸까. 예쁘기만 한데. 왜 안 된다는 걸까, 왜, 왜, 왜?
그렇게 거듭 큰 소리로 중얼거리던 계집애는 문득 집사의 표정이 짜증과 부아로 딱딱해진 것을 깨닫고, 슬슬 뒷걸음질을 쳤다.
-아, 아, 참! 그러고 보니 베, 벤한테 과자를 주기로 했었지.
소녀는 중앙에서 그럭저럭 익은 쿠키를 몇 개 꺼내 들어 앞치마에 감싸고는, 황급히 주방을 떠났다. 소녀가 떠난 주방은 고요했다. 여인은 만족한 얼굴로 미소 지으며 하던 일에 마저 집중하기 시작했다.
6.
짜디짠 소금기가 섞인 바람이 저 먼 치 바다로부터 휩쓸려와 여자의 머리를 거칠게 지나쳤다. 새까만 머리카락이 늘어진 해초처럼 날리면서 그녀의 시야를 가렸다.
여자는 자신의 검은 머리카락이 좋았고, 화가 날 만큼 싫었다. 까만 머리카락은 여인과 자신의 유일한 공통분모였으며 그 때문에 아직까지도 그녀는 차마 여인을 잊지 못했다. 까만 것은 여인을 생각나게 한다. 여자는 까만 것이 싫었다. 자정의 밤하늘이, 햇살 아래 그림자가, 검은 튤립이 싫었다.
댄버스 부인은 죽었다. 마지막까지 까맣게, 까맣게 타들어서 맨덜리와 함께 저 너머 땅속에 잠들었다. 레베카를 삼킨 파도를 맞대고, 여인은 죽었다. 단아하고 우아한 색으로 물든 채 노을 너머 황혼 속으로 잠들었다. 댄버스는 죽었다. 여자가 허탈한 듯 웃었다. 톡톡, 빗방울인지 눈물인지 모를 물방울이 치마 위로 여럿 떨어졌다.
댄버스 부인, 좋아했어요.
7.
비는 여전히 그치지 않았다. 댄버스가 흐느꼈던 그 날의 오후처럼, 그칠 줄 모르고 파득파득 바다 표면으로 거칠게 쏟아졌다. 여자는 파도치는 바다를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이미 머리와 드레스는 푹 젖어 물줄기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감기 걸리겠네. 여자는 눈을 감았다. 시커먼 시야 위로 맨덜리의 저녁이 비쳤다. 온 신경이 떨어지는 빗방울을 추모하듯 노래했다. 그때, 문득 어깨 위로 쏟아지던 물방울의 통증이 느껴지지 않았다. 여전히 비는 내리고 있었다. 여자가 고개를 뒤로 돌렸다. 그러자 한 청년이 그녀에게 우산을 씌우고 있는 것이 보였다. 더듬더듬, 어딘가 어눌한 발음으로 남자가 말했다.
"여, 여, 여기엔 왜 왔어?"
"아무것도 아니야."
여자가 대답했다. 그러는 그야말로 여기에 왜 왔는지. 사실 답은 뻔했다. 아마 그녀를 찾고 찾다 자기도 모르게 어느덧 이곳으로 흘러든 것일 테다. 그녀는 남자를 흘긋 쳐다보았다. 남자는 무언가를 회상하듯 지평선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맨덜리의 사람은 그랬다. 주변의 살던 사람들 또한 그랬다. 바다와 맨덜리는 떨어뜨려 놓을 수 없는 어떤 끈으로 꽁꽁 묶여 한 데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언제나 바다를 바라보며 한 때 아름다웠던 어느 안개의 저택을 떠올렸다. 희뿌연 맨덜리. 광기의 맨덜리. 맨덜리는 이제 그곳에 없었다. 까만 재만 남기고서 화르륵 타올라 하얀 연기로 스러졌다. 다만 넘실거리는 물결 한 줌에, 제 영혼 한 가닥을 죽어가는 손길로 겨우 아로새겼을 뿐이었다. 그렇게 맨덜리는 자신의 존재를 처절하게 부르짖고 있었다.
여자는 슬슬 옷매무새를 추슬렀다. 손끝이 스칠 때마다 옷자락에서 물기가 뚝뚝 떨어져 다리를 타고 흘렀다. 이상하게도 그리 찝찝한 기분은 들지 않았다. 다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대충 정리하며, 입꼬리를 당겨 부드럽게 웃은 여자는 이내 기다란 손가락으로 청년의 어깨를 톡톡 두드렸다.
"벤, 그만 돌아가자."
남자의 시선이 바다에서 떨어졌다. 여자가 느린 동작으로 녹녹하게 손짓했다. 그녀는 어린아이 다루듯 청년의 손을 잡고, 번화가를 향해 발걸음을 천천히 내딛었다. 걸음이 한 박자씩 느린 남자는 그녀의 한 발자국쯤 뒤에서 열심히 여자를 졸졸 쫓아갔다. 그 때문에 우산이 뒤로 처져 여자의 어깨가 빗속으로 다 드러났지만 그녀는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애초에 이미 흠뻑 젖을 대로 전부 젖어버린지라, 구태여 비를 조금 더 맞지 않는다 해도 의미는 없을 듯했다. 여자는 청년을 위해 일부러 더 천천히 걸으며, 그의 손을 다정하게 꼭 잡고 곰살맞게 물었다.
"배 많이 고프니?"
"응!"
끄덕, 남자가 고개를 아래위로 가볍게 흔들었다. 푸스스 웃은 여자는 맞잡은 손을 조금 빠르게 이끌며 남자의 우산을 새로 고쳐주었다.
"얼른 가자. 둘 다 감기 걸리겠네."
남자가 해맑게 활짝 웃었다. 여자 또한 조금은 밝게 펴진 표정으로, 청년의 머리를 한 번 쓰다듬어 주고는 이내 집을 향해 다시 걸어갔다. 어느덧 비가 서서히 멎고 있었다. 사납게 휘몰아치던 파도도 조금씩 가라앉았다. 맨덜리의 어둠은 저물어가고, 창공은 새하얀 별빛으로 가득 반짝였다. 도로 위에 괸 물웅덩이도 거리의 불빛으로 하얗게 물들었다. 하얗게, 하얗게 어둠이 물러났다. 그림자마저 하얗게 빛나는 밤이다.
그간 평안하셨나요? 전 그럭저럭 훌륭한 하루를 마치고 이제 막 책상 앞에 앉은 참이랍니다. 아직 짐을 덜 풀어서 방이 좀 너저분하긴 하지만, 이곳 마이얼링은 선생님께 듣던 대로 과연 아주 멋있는 곳이에요. 마을이 작아서 그런지 사람들도 다들 친절하시고요. 앞집에 사시는 샤를로트 씨는 짐을 푸는 것도 도와주셨는데 초콜릿 무스를 바른 케이크를 구워서 몇 조각 나눠주시기까지 하셨죠.
이번에 제가 살게 된 집은 그리 좋지는 않지만 또 그리 나쁘지도 않아요. 방은 단 두 개뿐인데, 창문이 커다래서 (벽 한 면이 죄다 유리로 되어있어요!) 햇빛이 잘 들어오는 방을 화실로 삼기로 했어요. 한 가지 나쁜 점이라면, 햇빛이 너무 잘 들어오는 바람에 그림을 그리고 나서 캔버스를 일일이 다른 방으로 옮겨야 한다는 점 정도이지요. 덕분에 제 침실의 한켠을 커다란 캔버스가 차지하게 생겼죠. 그렇지만 주변이 조용해서 그림 그리기에는 아주 좋은 곳이에요. 아, 그리고 집에서 조금 더 안쪽으로 들어가면 황실의 사냥 별장이 보이는데, 막스 씨가 말씀하시길 이따금씩 황실 사람들이 며칠 정도 쉬다 가기도 한다고 해요. 오, 어쩌면 예쁜 우리 시씨 황후 폐하를 보게 될지도 모르죠! 그건 아주 멋진 일일 거예요. 음, 일단 그녀가 여행에서 돌아온다면요.
슬슬 하루의 피로가 극에 달하는 것 같아요. 이만 펜을 내려놓고 침대에 눕는 게 좋겠어요. 비록 말로 전할 수는 없겠지만 선생님도 잘 주무시기를 마음으로 바라고 있겠어요. 안녕, 답장 기다릴게요!
Ps. 마침 이젤을 세워둔 방의 창문으로 밤이 되면 새하얀 뭇별이 도글도글 피어나는 게 직관적으로 보이더군요. 그게 아마 제 첫 작품이 될 것 같아요.
마이얼링에서, 당신의 마르가레테가.
*
사랑하는 베그너 선생님에게
나의 보물, 그동안 잘 지내셨나요?
답장은 물론 잘 받아보았답니다. 야스 언니도 잘 지낸다니 다행이네요. 그녀에게 안부 전해주세요.
아, 그리고 걱정해주신 덕에 드디어 짐을 모두 정리했어요! 방이 넓어지니까 더불어 꾸미고 싶은 욕구가 차곡차곡 생기기 시작했지요. 나중에 마을 한가운데에 있는 예쁜 장식 가게에 들러 볼 생각이에요. 카펫을 깔면 정말 근사해 보일 것 같거든요.
집이 깨끗해지니까 이제 그림을 그릴 여유도 생겼어요. 요즘은 그때 말씀드린 그 창문의 밤하늘을 그리는 중이에요. 예전처럼 선생님이 옆에서 봐주신다면 훨씬 훌륭해질 텐데, 그러지 못한다는 게 아쉽네요. 나중에 마이얼링으로 꼭 놀러 와요, 내 사랑! 아, 이곳에 당신에게 보여주고 싶은 것들이 너무도 많아요. 편지로 모두 담지 못하는 이야기들도요.
Ps. 새 친구가 생겼어요. 아직 이름은 모르지만 저처럼 얼마 전부터 이 근방에서 살기 시작하셨다나 봐요. 아주 좋은 분이시죠.
여전히 선생님을 사랑하는 그레트헨
*
리브링, 슈테반 베그너 씨에게
샷치, 오랜만이에요!
답장이 많이 늦어서 미안해요. 그간 조금 바쁘고, 또 피곤했었거든요. 하지만 여전히 당신을 기억하고, 또 여전히 당신을 사랑하고 있어요. 음!
지난 편지에서 잠깐 말씀드렸던 제 친구를 기억하시나요? 저는 요 며칠간 그와 더 친해졌답니다. 여전히 이름도, 어디에 사는지조차 모르지만 (그는 자신에 대한 것들을 물을 때면 그냥 멋쩍게 하하, 웃고는 흘려버려요) 우린 놀랄 정도로 가까워졌죠. 어쩌면 우리 둘 다 마이얼링의 이방인 신세라 그런 걸지도 몰라요. 어쨌든 그는 정말 좋은 분인 것 같아요. 제 그림도 좋아해주세요. 이번에 그리고 있는 밤하늘 그림을 보고 아주 기대된다고 말씀해주셨어요. 그리고 기회가 된다면 자신도 그려달라고 했지요. 아 참, 그 밤하늘 그림의 이름은 ‘마이얼링의 은하수’로 하기로 했어요. 사랑하는 선생님, 아직도 ‘은하수’라는 단어를 좋아하시나요? 그렇다면 이 작품은 당신을 위한 것이 될 거예요.
그는 가끔씩 농담을 하는 것도 좋아해요. 지난번에 그가 저를 부러 ‘아름다운 프로일라인’이라고 부르기에, 제가 ‘저는 프로일라인도 아니고, 아름답지도 않아요, 라인리히.’ 라고 맞장구쳤죠. 그러자 그가 웃으며 융프라우라고 정정하더군요. 음, 사실 저는 제 이름을 가지고 장난치는 것을 썩 유쾌하게 생각하지 않아요. 그렇지만 왠지 그가 하는 농담은 기분이 나쁘지 않네요. 그분은 정말 좋은 분이거든요.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 지낼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요.
바람이 별에 스치는 서늘한 밤이에요. 사랑하는 선생님, 안녕히 주무세요.
Ps. 이제 마카롱을 깨지지 않게 구울 수 있게 되었어요! 모두 샤를로트 씨 덕이죠. 사실 요즘 샤를로트 씨한테 빵 굽는 법을 배우고 있답니다.
마이얼링의 작은 방 안에서, 그레트헨
*
보고 싶은 베그너 선생님
안녕하세요, 디어!
오늘따라 당신이 정말 그립군요. 우리가 헤어진 지도 어느덧 이주가 되었어요. 난 항상 당신을 생각하고 있답니다. 선생님은 어떠신가요? 이따금씩 창문 너머의 너도밤나무를 바라보며, 그 앞에서 그림을 그리던 까만 머리의 작은 소녀를 기억해주신다면 당신의 그레트헨은 무척이나 기쁠 거예요.
음, 오늘도 선생님께 내 친구 얘기를 해드린다면 그건 아주 즐거운 일일 테지만, 아쉽지만 그 일은 조금 미뤄둬야 할 것 같아요. 말할 기회가 된다면 당신께도 꼭 말씀드릴게요. 저는 당신을 누구보다도 가장 신뢰하고 있어요. 그렇지만 아직은 때가 아니고, 저에겐 그 이야기가 아닌 다른 말할 것들이 아직 많이 남아있죠!
우선 제 자그마한 방들이 정말 놀라울 정도로 많이 바뀌었어요. 다들 한 번씩 보고서 예쁘다고 침이 마르도록 격찬한다니까요. 마을에서 이것저것 사다가 붙이고 꾸며봤죠. 벽에는 밝은 갈색 나무판으로 선반을 만들어 걸고(목수 일을 하시는 알베르트 씨의 도움을 받았어요.), 예쁜 인형과 장식품들을 놔두고 또 벽지도 새로 발랐어요! 선생님이 보내주신 편지와 그림들은 벨벳으로 만든 상자 안에 차곡차곡 모아 놓았어요. 윤이 흐르는 검은 비단으로 된 것인데 아주 예쁘답니다. 이웃집에서 선물로 받은 거지요.
그리고 요즘은 가나슈 붓세 만들기에 진을 빼고 있어요. 빵을 굽는 일은 여전히 어렵지만 샤를로트 씨가 굉장히 친절하게 가르쳐 주고 계세요. 바쁘지 않으시다면 언제든 야스 언니랑 마이얼링에 놀러 와요. 그럼 제가 케이크도 구워 드리고 그림도 보여드릴 텐데!
참, '마이얼링의 은하수'가 거의 완성되어 가고 있어요. 피드백도 받지 않고 저 혼자 그리는 건 거의 처음이라 살짝 불안하지만 제 친구가 멋있다고 해줬으니 괜찮은 걸 거예요.
존경하는 선생님, 요즘 날이 많이 추우니 옷을 꼭 따뜻하게 입고 다니셔야 해요. 당신이 아프다면 저는 한동안 슬퍼하기만 할 테니까요. 주님의 그늘 아래 은혜로 충만한 하루가 되시길!
Ps. 편지를 쓰면서 고민해봤는데, 다음에 당신께 꼭 드릴 말씀이 있어요.
당신의 소녀 마르가레테
*
사랑하는 나의 슈테반 베그너 씨에게
내 사랑, 그간 잘 지내셨나요?
오늘은 내 친구에 대해서 선생님께 말씀드릴 생각이에요. 아시겠지만, 그의 이야기를 다른 사람한테 절대 하지 말아주세요. 그리고 편지를 다 읽으신 후에는 당신만 아는 장소에 숨기거나,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만드세요. 불로 태우는 것도 좋은 방법이겠죠. 저는 선생님을 가장 믿고 의지하고 있어요. 그래서 내가 이 이야기를 당신한테 해드리는 거예요. 때로는 혼자만 알고 있기 버거운 진실도 있는 법이니까요, 샷치. 하지만 그는 정말 좋은 사람이고, 그 또한 나를 좋아하고 있으니 크게 걱정하지는 말아요.
선생님, 내 친구의 이름은 '루돌프'예요. 그러니까, 이름이 '루돌프 프란츠 칼 요제프'라는 거죠. 아시겠어요? 그는 황태자예요. 마이얼링의 주민으로서 황족을 만나기를 기대하긴 했지만··· 오, 설마 그 날이 이렇게 빨리 올 줄은!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를 대하는 데에 차별이 있으면 안 되겠지요. 모든 사람은 하느님 앞에 있어 평등하니까요. 적어도 그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요(이 말이 무슨 뜻인지는 알고 계시죠?). 그는 여전히 친절하고 착한 분이시고, 저 또한 그를 가장 친한 친구로 여기고 있어요.
어쨌든 저는 그를 더 자주 만나고, 더 잘해주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그는 좀 더 사랑받아야 할 필요가 있죠.
아직 할 말이 더 남아있지만, 이 외의 이야기는 다음에 할게요. 사실은 아직도 떨려서 머릿속이 쨍하거든요. 좋은 꿈 꾸시길, 내 사랑.
당신이 사랑하는 마르가레테가.
*
리브링, 나의 베그너 선생님에게
안녕하세요, 샷치!
나는 지금 마이얼링의 별장에서 편지를 쓰고 있어요. 그리고 당분간 이곳에서 지내기로 했지요. 그는, 그러니까 루돌프는 내가 함께 있어 주기를 바라고 있어요. 많이 외로운 사람이에요.
아, 그렇다고 해서 당연히 우리가 서로에게 연정을 품고 있다거나 그런 건 아니에요. 단지 그가 각별하게 정을 주고, 각별하게 정을 받을 사람이 필요한 것뿐이죠. 또 내게 있어 그는 가장 사랑하는 친구이고요. 이건 비밀인데, 사실 그는 좋아하는 사람이 있어요. 말로는 정말 옛날부터, 한 10년도 전쯤부터 쭉 기다렸다는데 그녀는 아직까지도 모습조차 드러내지 않는다는 거지요. 다시 만나자는 약속만 남긴 채로. 음, 그녀가 누구인지 정말 궁금하지 않나요? 온통 하야면서도 온통 새까만 사람. 아, 난 그녀를 꼭 만나보고 싶어요. 내 친한 친구의 사랑하는 사람인 이유도 있지만, 그의 이야기로 듣는 그녀의 모습은 정말 아름답고 매력적이에요. 비록 그녀는 여자이지만 어쩌면 나 또한 그녀에게 푹 빠져버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어요. 오, 물론 난 친구의 애인을 뺏을 마음은 눈곱만큼도 없답니다!
이곳 별장은 아주 훌륭한 곳이에요. 당연하지만 제가 살던 작은 집과는 비교도 안 되지요. 샤를로트 씨와 막스 씨, 베아트리체 언니, 알베르트 씨, 또 카우프만 부인··· 비록 그들을 예전처럼 자주 만날 수는 없어서 슬프지만 루돌프가 옆에 있어 주니까 괜찮아요. 전 그와 함께 요즘 꽤나 행복한 하루를 보내고 있는 중이에요. 같이 산책도 하고, 체스도 두고, 책도 읽고, 아무튼 많은 것을 그와 함께하고 있어요.
아, 그리고 드디어 '마이얼링의 은하수'를 완성했답니다! 다행히도 루돌프의 저택에 가기 전에 아슬아슬하게 끝마쳤지요. 조금이라도 늦장을 부렸다가는 아주 큰일 날 뻔했어요. '마이얼링의 은하수'는 제 옛 화실의 창밖 하늘을 보고 그려야만 의미가 있으니까요. 참, 작품의 뒤에는 이렇게 서명해놨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존경하는 나의 슈테반 베그너 씨에게." 내 사랑, 이 문구가 마음에 드나요? 당신이 이 그림을 꼭 좋아해 줬으면 좋겠어요.
Ps. 언제 한 번 잘츠부르크에 놀러 갈게요. 사랑하는 선생님, 난 당신이 많이 그리워요.
마이얼링의 밤하늘 아래, 마르가레테
*
나의 사랑하는 봄, 베그너 씨에게
그동안 잘 지내셨나요? 여전히 당신이 보고 싶은 겨울이에요. 마이얼링에는 어느덧 새하얀 눈이 내리기 시작했어요.
어머, 그건 그렇고 그 분수대 앞의 동상이 철거된다니 정말 슬픈 일이에요. 저는 그 동상을 꽤나 좋아했었거든요. 그는 가끔 비탄에 젖은 나를 따스한 금빛으로 위로해주기도 했지요. 그의 차가운 심장은 어느 이야기에 나오는 것처럼 하느님의 곁에서 영원히 그 이름을 찬미할 거예요. 제가 그러기를 기도하겠어요.
요즘은··· 음, 그러니까··· 전 잘 지내고 있어요. 네! 포근한 난로 옆의 소파 위에서 소설과 시집을 읽고, 오후에는 루돌프가 사냥하는 걸 구경하러 가고요, 또 여전히, 여전히···
그게, 선생님. 이건 내가 당신이니까 하는 이야기인데···
루돌프가 이상해요. 정말 많이. 솔직히 난 이제 그가 조금 무서워요.
그는 갑자기 기운이 없어졌어요. 항상 힘없는 미소를 내게 지어주시죠. 질척질척한 몸짓으로 무기력하게 할 일을 마치고는 말없이 허공을 응시하는 게 그의 하루예요. 또··· 그는 이 집 안에 나와 그 말고 다른 누군가가 있는 것처럼 행동해요. 입버릇처럼 ‘그가 기다리고 있어.’라는 혼잣말을 하세요. 밤에는 그의 방에서 혼자서 두런두런 말하는 소리가(간간한 웃음소리와) 제 침실까지 들려요.
그리고··· 제가 가장 걱정되는 건, 아침이 되면 그의 손목이 온통 피투성이가 된다는 거예요. 이런 생각을 하는 것조차 정말 무서운 거지만··· 제 생각에는 그가 자해를 하고 있는 것 같아요. 아, 샷치. 그는 도대체 왜 그런 일을 하는 거죠? 제가 뭔가 그에게 잘못한 게 있는 걸까요? 나는 그가 너무 안쓰럽고, 또 무섭기도 하지만 그에게 해줄 수 있는 일이 없어서 너무나도 슬퍼요. 참을 수 없을 만큼. 그는 내가 마이얼링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인데 난 그에게 조금의 도움조차 될 수 없어요. 난 그의 내면의 고통과 상처를 알지 못해요. 그는··· 내게 자신의 이야기를 해주지 않아요.
사랑하는 베그너, 나는 내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하지만 당신은 여전히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선생님. 당신은 내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에요. 당신이 슬프고 힘든 걸 원치 않아요. 혹시라도 고통받는 일이 있으면 조금이라도 내게 말해줘요. 비록 내가 도움이 되지는 않겠지만··· 당신의 버팀목 정도는 되어줄 수 있으니까요. 사랑해요.
마르가레테
*
눈 덮인 잘츠부르크의 베그너 씨에게
나의 샷치, 저는 더 이상 마이얼링에서 지내고 싶지 않아요. 사랑스러운 봄의 잘츠부르크에서··· 당신 옆에서 그림 그리던 그때로 돌아가고 싶어요.
루돌프는 정말로 좋은 사람이지만··· 난 이제 그의 옆에 머무를 수 없어요. 그는 자해를 멈추지 않아요. 오히려 그 횟수가 급증하고 있을 뿐이지요.
···아시겠어요?
‘죽음’. 그는 여태껏 죽음을 부르고 있어요. 그게 그가 스스로를 상처 낸 이유예요. 그··· 그가 사랑했던 여자는 바로 죽음이었어요.
그리고, 어제 저는 그의 방에서 웃음 짓는 죽음을 봤어요. ···네, 맞아요. 그 남자는 죽음이었어요. 죽음이 아니면 그를 설명할 길이 없다니까요.
···내 사랑, 오늘은 이쯤에서 편지를 끝맺는 게 좋겠어요.
그레트헨
*
슈테반 베그너 씨에게
안녕, 샷치. 아무래도 제가 지난번에 보낸 편지가 많이 불친절했던 것 같군요. 미안해요.
···샷치, 나는 지금부터 내가 알고 겪은 일들을 당신께 최대한 담담하게 얘기하려고 해요. 내게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은 당신밖에 없어요. 굳이 일을 해결하거나 위로해주지 않아도 괜찮아요. 그냥 내 얘기를 들어만 주세요.
선생님, 루돌프가 죽음을 사랑하고 있다고 말씀드렸죠. 네, 그건··· 믿기 힘드시겠지만 사실이에요. 그는 죽음을 사랑하고 있어요.
죽음에 성별을 따지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냐만은, 저는 처음에 그가 사랑한다는 사람이 있다기에 당연히 그가 여자일 거라고 생각했지요. 그, 동성애를 폄하하려는 뜻은 아니지만요. 어쨌든요, 아, 누차 말씀드리는 거지만 그는 성별이 없어요. 말 그대로 ‘죽음’이니까요. 굳이 그에게 성별이란 걸 논한다면 양성에 가까울 거예요. 제가 지금부터 말하는 건 ‘외관’으로서의 성별이에요. 죽음, 그는 인간에 비유하자면 이십 대 후반쯤에 달하는 남성의 모습을 하고 있었어요. 날카로우면서도 부드럽고, 또 섬세한 인상이었죠. 저는 그를 보자마자 단숨에 그 존재를 알아챌 수 있었어요. ‘죽음’. 모든 사람이 죽음을 볼 수 있는 건 아니지만, 만약 죽음을 보게 된다면 저처럼 단번에 정체를 알아볼 수 있을 거예요. 그것은 인간의 본능이에요.
루돌프, 내 친구는 그의 곁에서 행복해하고 있었어요. 너를 많이 찾았어, 사랑해, 뭐 이런 것들 있잖아요? 그런 연인들이 흔히들 주고받는 말 같은 걸 서로에게 건네고 있더군요. 그때, 문득 그가··· 죽음이 내 쪽으로 고개를 휙 돌려 나를 바라보았어요. 숨만 겨우 삼키고 있던 내게 입꼬리를 끌어당겨 미소를 지었지요. 차가우면서도 매혹적인 그 웃음! 나는 바로 그 방문을 등지고 그곳에서 빠져나왔어요. 그러나 한동안 죽음의 미소를 잊을 수 없었어요. 아, 샷치. 이게 무슨 의미인지 알겠어요? 그래요, 나는 죽음을 원하고 있었어요. 내면 깊은 곳으로부터 간절하게 그를 원하고 있었던 거예요. 그래서 그의 그 미소가 그리도 유혹적으로 보였던 거죠. 예전에 루돌프의 입으로만 전해 듣던 그에게 빠져들 때부터 눈치챘어야 하는 건데! 선생님, 아직 내 마음의 병이 못내 치료되지 않은 것 같아요. 난 마이얼링에 온 뒤로 내 우울증이 점차 나아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나 봐요. 선생님, 어쩌죠? 전 무서워요. 저도 루돌프, 내 친구처럼 나도 모르게 그에게로 가버릴까 봐요.
샷치, 난 죽고 싶지 않아요. 하지만 그게 내 진심이 아닌 것 같아서 너무 두려워요.
당신을 사랑하는 마르가레테가.
*
사랑하는 내 슈테반 베그너 씨에게
안녕하세요, 샷치!
혹시 지난번 편지를 받고 많이 놀라셨나요? 아, 사랑스러운 선생님, 당신은 너무도 순진하군요. 그건 모두 다 제가 꾸며낸 이야기였답니다. 그저 선생님을 조금 놀라게 해드리고 싶었을 뿐이었어요. 세상에 죽음을 볼 수 있는 사람이 어디 있나요?
저는 여전히 행복한 삶을 살고 있어요. 이번엔 또 새로운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죠. 작품명은 ‘천사’예요.
전 요즘 정말로 즐거워요. 그러니 너무 걱정하실 필요 없어요. 그리고, 당연하지만 마이얼링에 선생님께서 굳이 오실 필요도 없죠! 저는 너무도 잘 지내고 있답니다. 날도 추운데 그냥 잘츠부르크의 뭉근한 카페 안에서 따뜻한 차 한 잔의 여유를 즐기시는 건 어떨까요? 그래요, 그게 좋겠어요. 그건 지금 당신한테 가장 필요한 거니까요.
사랑하는 샷치, 난 당신이 소중한 인생의 시간을 보잘것없는 것으로 낭비하지 않기를 바라요. 그러니 저 같은 건 잊어버리고 그만 행복하게 당신의 삶을 살았으면 좋겠어요. 당신의 시간에서 까만 머리 그레트헨은 이제 없는 거예요. 아셨죠? 그리고··· 그레트헨은 여전히 세상에서 당신을 가장 사랑하고 있어요. 사랑해요, 베그너. 그건 절대로 변치 않아요. 선생님, 당신은 제 인생에서 가장 위대한 의사였어요. 당신이야말로 나의 구원자, 나의 신, 나의 천국, 나의 ‘그레트헨’···
안녕히 계세요, 나의 슈테반. 그대의 앞엔 은총의 불꽃만이 깃들 거예요.
Ps. 야스 언니와 제 가족들에게 안부 전해주세요. 사랑한다는 말도.
베그너 씨를 정말이지 너무도 사랑하는 마르가레테
내용이 급전개로 흘러가는 감이 없지 않아 있는데, 한 달이 안 되는 시간 안에 편지로 내용을 전달하려니 어쩔 수 없었어요...
이번 연성은 사실 톧돒 커플링에 치중에서 쓰려고 했는데, 어쩌다 보니 본작 내용이랑 전혀 상관없는 글이 됐네요. 그냥 1차 연성이라고 보셔도 무방할 정도로 노연관이라서 저도 당황스럽습니다..... 심지어 이거 원래 톧돒이었어요 드림이 아니라.... 그래서 카테고리도 그냥 write로 하려고 했는데 그러기에는 그레트헨의 존재감이 너무 커서 걍 드림에 넣었어요. 정말 참 이도 저도 아닌 글인데 원래 이 블로그가 그런 글 올리는 용도로 판 거라.... ^-T
여하튼 대충 내용은 정신 질환자인 그레트헨이 잘츠부르크에서 심리치료+미술치료 받다가 마이얼링으로 내려와서 요양하는 건데 이렇게 내용을 굳이 설명해드리는 이유는 이 글을 읽은 분의 80%는 내용을 이해를 못 하셨을 거기 때문에.... 음 네 저도 이해 못했거든요.....
그리고 그레트헨=엘리자벳 디폴트 드림주가 맞아요. 다만 제가 원래 파는 엘리 드림이 아니라 평행 세계 정도로 이해하시면 될 것 같구요. 이름은 임의로 그레트헨이라고 했는데 쓰다보니 은근히 괜찮아서 앞으로 엘리 드림 드림주 이름이 그레트헨이 될 가능성이 농후해졌어요! 반 년만에 이름 지었네요.
아, 본문에서 그레트헨이 의사한테 계속 내 보물이라느니, 샤츠, 리브링, 사랑하는~ 같은 수식어를 계속 붙이는데 둘의 사이가 연인 관계인 건 아니에요. 다만 그레트헨이 약간 정신적으로 이상이 있고, 애정 결핍 증상이 있는 상황이라는 걸 감안해주셔서 그냥 애정 표현이 좀 과한 환자와 의사 정도로 생각해주세요.